어느나라든 그렇지만 본토라는 기준과 멀리 떨어져있는 섬들은
고유한 문화와 정서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건 기후의 영향일 수도 있고 물리적인 거리의 영향 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이지만 한반도안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독특한 문화를 배척하지 않고 상호 존중하며 적절하게 융화되는 것이
옳다라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의 이러한 당연한 사고들이 당연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근거로 다양한 섬들은 역사적으로 다양한 아픔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들이 많지 않은가
오늘은 그러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섬들 중 하나인 오키나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키나와라고 하면
아시아의 하와이 일본의 섬 푸른 바다와 하늘을 생각할테지만
그 뒷면에는 한국인이라면 뭔가 동질감을 느낄만한 사연들을
가득 가지고 있는 곳이다.
단순히 휴양지로서의 오키나와가 아닌
한국과 비슷한 역사적 아픔을 가지고 있는
오키나와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오키나와는 현재 일본이라는 나라의 섬이지만 19세기 말까지는 류큐 왕국이라고 불리는 독립된 왕국이었다.
류큐왕국 이전에는 중산 북산 남산이라 불리우는 3명의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가령한 중산의 지도자가
3곳을 통합하여 류큐왕국을 성립한 것이다. 류큐왕국은 중국과 많은 교역을 하며
그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성장시키었는데 대표적으로 유명한 슈리성을 예로 들 수 있다.
독립된 국가로서 지리적 이점을 이용, 중국,일본과 교역하며 외교적 노선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879년 일본에게 무력으로 통합되어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당시 류큐왕국은 고유한 언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았으며 류큐어를 사용하면 류큐어를 사용했다는
나무로 만들어진 팻말을 목에차고 다니기도 하였다고 한다.
해당 내용은 아직까지 오키나와 현립박물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자신들의 살던 곳을 빼앗기고 언어까지 사용이 제한되었던 류큐인들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게 없어 보인다.
(아직까지 일본어가 아닌 류큐어로 말씀 가능한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하지만 슬프게도 류큐왕국, 오키나와는 더 큰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1945년 세계 2차대전 막바지 치열하고도 잔인했던 오키나와 전투이다.
일본 국토 내에서 유일하게 전면전이 일어났던 곳은 오키나와다.
왜 유독 오키나와였던가에 대해서는 분분한 의견이 있다.
일본 본토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패막이로 쓰였다는 추측도 있으며
전략적으로 유리한 위치이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로 쓰기위해 선제 타격했다는 추측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됬던건 전쟁이란건 상당히 비극적인 사건이며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강제로 통합된게 70년 남짓한 일본이라는 나라를 위해 그들의
생명과 땅이 내던져진 것이다 참으로 슬픈일이 아닐 수가 없다.
당시 오키나와 전투로 피해가 가장 컸던 측은 일본군도 미군도 아닌 오키나와 주민들이었다.
생활터전을 비롯해 철도, 중요한 문화재를 잃은 것은 물론
약 12만명의 오키나와 주민이 전쟁의 피해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 1/4에 달하는
무서운 수치다 (미국 추산으로 당시 일본군의 전사자는 6만5천명 미국 전사자는 1만 5천명)
전쟁이 끝났어도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돌아갈 수도, 일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바로 미국령이 되버린 것이다.
이것또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중국을 견제하던 미국에게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미국이 오키나와를 탐냈었다는 추측이 있다.
당시 류큐왕국에서 일본으로 강제로 통합된지 7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일본인도 여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미국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당시 일본 본토에서는 미국 기지 반대운동을 하는 평화 운동이 한창이였는데
일본 정치인들이 그러한 협상과정에 오키나와로 미군 기지 건설을 많이 옮겨가게 되었다.
현재 오키나와가 일본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1퍼센트도 안되지만
주일미군 기지를 70퍼센트 넘게 수용하고 있다.
(사진에 볼 수 있듯이 기지와 도심지가 바로 붙어있기 때문에 헬리콥터가 학교에 추락하거나 불시착하는
일이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오키나와에 많은 미군 기지가 있는 것에 대해
일본 정부에 의견을 표하고 있다)
일본에도,미국에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오키나와인들의 이러한 슬픈
체제는 무려 1972년, 3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 후로 다시 일본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현지인에 말에 따르면 다시 일본에 속하는 그 날 도로가 우측통행에서
좌측통행으로 하루 아침에 바뀌었다고 한다. 그 날 사고가 참 많았었다는 약간은 씁슬한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오키나와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해보았는데
이러한 슬픈 이야기들은 왠지 우리가 겪은 가슴 아픈 역사들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강제로 통합되어 70년 안된 시점에 이웃들의 1/4분이나 잃은 전투
그 후에 미국령 그후에 다시 일본
100년이 안되는 시점에 3번이나 나라가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오키나와를 아직까지 일본이라고 생각하지않는다
물론 지금 오키나와는 일본에 속한 섬임에는 틀림없으며
젊은 사람들은 일본 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외부자본으로 그럴듯하게 꾸며진 오키나와의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오키나와의 모습을 알게 된다면 왠지모를 동질감이 생긴다.
오키나와는 같은 오키나와 사람들끼리의 정이 상당히 두터워서
일본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배척당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고 한다.
아마 단순히 거리적 차이가 아니라 아픈 경험들을 같이 겪어온 이웃이기 때문에
비롯되는 감정이라 생각된다.
우리나라도 유독 애국심이 강한 이유가 역사적 아픔의
영향이 있지 않은가?
한국인이라면 한번 즘 읽기 바라는 오키나와의 역사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묻고싶다.
아직까지도 그저 휴양지로 포장된 일본의 작은 섬인가
아니면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동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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